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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서태지를 ‘수혈’받다

문화대통령 서태지를 품은 노동문학 대통령 박노해, 민주주의 2.0 시작해…

 

 

2015-06-10, 12:33, 기획: 엄정화, 기자: 강푸름

80년대, 박노해는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노동문학의 중심을 이끌었다. 그는 열악한 노동 조건이라는 최악의 한계 상황을 낮은 포복으로 기어서 통과해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노동 시인이다. 이름에서부터 그의 정체성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박(박해받는) 노(노동자) 해(해방). 노동자해방을 위해 뜨겁고 치열하게 투쟁하던 그는 1989년부터 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하여 급진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한다. 그러다 1991년 국가안전기획부에 체포돼 고문과 재판을 받고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98년, 구속수감 7년 5개월 만에 출소한 그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수감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사회주의를 맹렬하게 이끄는 노동시인이자 노동운동가였다. 하지만 그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7,80년대는 군부독재가 삼엄한 시기였지만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시작했으며,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자본주의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그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다른 의미의 민주주의-평화주의-를 외치고, 자본주의의 부작용에 대항하는 운동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패러다임과 가치관, 삶의 방식을 커다란 사고의 틀에 담아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박노해는 문화대통령인 서태지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진화된 신세대의 전형을 보여주는 서태지를 통해 박노해는 무엇을 ‘수혈’ 받았을까? 90년대 젊은이들의 언어와 몸짓을 대변했던 서태지, 그가 그 당시 사회에 미친 영향에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서태지, 90년대 문화를 대표하다

서태지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청소년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고 대중가수로서는 유례없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는 음악적 영향력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다. 그로 인해 서태지는 ‘10대들의 대통령’, ‘문화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데뷔 이후 그는 꾸준히 자신의 이름에 대한 무게감을 갖게 되었다.

 

서태지의 음악은 사회적 이슈를 공론화하는 동시에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만들어내면서 대중이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그러한 변화는 진보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서태지가 데뷔한 1990년대 초의 사회분위기는 80년대와는 전혀 달랐다. 직선제 쟁취 투쟁의 승리와 노태우의 집권은 사람들에게 민주화의 경험을 하게 해주었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3당 합당으로 인해 정치에 관심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민주화에 대한 열기는 냉각되어갔다. 따라서 90년대 초에는 사회적 관심을 새로운 방향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성되었고, 그것은 ‘음악’이라는 것으로 분출되었다.

 

발라드와 트로트가 중심이었던 가요계에 댄스음악이라는 낯선 음악을 들고 나타난 서태지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개인주의적이고 탈이념적인 새로운 신세대를 위한 가치관을 제시하였다. 그로 인해 대중은 점차 기성세대와 신세대로 나뉘어 대립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변화해갔다. 어떤 이들은 서태지에게서 미래를 발견하였고, 지지와 연대를 표현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이 박노해였을 것이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세대 간의 갈등을 야기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서태지가 젊은 세대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우려하기도 하였다.

 

어찌됐든 서태지의 출현은 대중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도입시키고 동시에 문화혁명을 일으켰다. 그러한 문화혁명은 90년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박노해, 서태지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

그는 서태지가 가진, 그리고 서태지로 상징되는 신세대가 가진 인간의 진화성에 주목했다. 그는 신세대를 통해 ‘인간의 진화’를 본 것이다. 그가 정의내린 신세대의 특성은 ‘3N’이다. 그것은 NEW, NOW, NET이다.

 

「NEW-신세대들은 새로운 것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급변하는 시대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민감한 더듬이를 가지고 재빠르게 반응해 자기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이것은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한 자질이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NOW-말 그대로 ‘지금 여기’를 뜻한다. 신세대들은 지금 현재 삶의 흐름을 중시하는 프로세스적인 계획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순간순간에 충실한 삶을 쌓아나가고 키워나간다. 이 또한 우리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NET-네트라는 것은 거미줄처럼 관계망을 가지는 것이다. 삶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그물망과 같은 것이니, 관계·공동체·공동선을 중시하는 것이 네트에 담겨있는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신세대의 긍정적 측면을 감싸면서 부정적 측면은 극복해 나가도록 도와주고 변화해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신세대들이 지닌 특성들을 새로의 문화 운동으로 제기할 생각이다.」

 

박노해는 서태지를 통해 신세대의 전형을 보았고, 신세대가 가지고 있는 새롭고 발랄한 특성들을 체득하여 기성세대들이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나아가기를 바랐다.

 

□박노해,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다

박노해는 자신의 기존 가치관이나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화해갔다.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과 소수 독점, 노동의 소외와 천대에 대해 비판하고 그것에 대안을 제시하며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를 주창해 나갔다. 그렇게 그는 민주주의의 2.0을 시작했다.

 

신세대 문화에도 각별한 관심을 내비치는 그는 수감 중에 서태지의 노래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21세기를 이끌어 갈 신세대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내가 앞으로 벌여갈 실천 운동의 핵심 대상은 신세대들”이라며 “386세대를 비롯한 구세대의 ‘진지함’과 N세대(신세대)의 ‘참신한 감각’을 접목시킬 때 새 천년의 희망과 비전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한 새 천년에는 양측(기득권, 비기득권)의 조화를 위해 ‘나눔의 패러다임’이 등장해야 한다고 했다. 가진 자가 사회복지단체에 기부금을 내고, 전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는 기아 난민들을 위해 성금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나눔의 문화’가 정착될 때 진정한 평등이 도래 한다는 것이다.

 

생명운동, 평화운동의 연장선상으로, 전쟁으로 인해 어려운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사진가로서도 활동하는 박노해. 그들의 실상을 담은 사진전까지 여는 그는 이제 어엿한 사진이다. 그의 활동 범위에는 그만큼 한계가 없다.

 

박노해는 달라진 시대에 대응하여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이념을 변화시켰다.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앞으로 또 어떤 행보를 펼쳐나갈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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